오픈토크에서 말했거나 얘기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한 이야기는 여기가 아닌 저기에 정리했다(아직 쓰지 않아서 클릭해도 아무것도 안 열림). 이 포스트에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산 중턱에서 두리번 두리번.
후기를 쓸 생각은 없었다. 잠깐 딴 얘기인데 어제 9월 10일 오헬렌 공연을 봤다. 와 멋지고 완전 좋았고 좋았지만 나는 자기 전 누워서 미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과 후기 쓰기 싫다는 생각 인천에 쌓아둔 일 더미 고민과 어서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을 번갈아 하다 잠들었다. 무슨 후기냐면 2023 금천예술공장 오픈스튜디오 9월 3일 오픈토크 <레지던시와 프리즈의 동행(?)> 후기. 토크 때 보려고 우다다 메모해 둔 것을 읽을 수 있게 정리해서 인터뷰했던 분들에게 경험과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하고 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고 메일 보낼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 후기를 쓰겠다고 그때 못한 말도 정리해서 쓰겠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왜 그랬지. 사실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후기 왜 안 쓰냐고 누가 캐묻거나 하진 않을 것이고 궁금해하지도 않겠지만, 나는 이런 것에 잘 붙잡히는 사람인데 왜 그랬을까…. 이유가 없지는 않다.
토크가 끝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토크가 그냥 그랬고 무엇보다 내가 별로였다. 어서 집에 가서 씻고 눕고 싶었지만 저녁 약속이 있어서 약속 시간 전까지 금천예술공장 오픈스튜디오를 조금 더 보기로 했다. 2층 저쪽에서 현정윤 작가가 보였다. 현정윤 작가는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는데 순간 인사를 받는 사람이 울음을 터트렸다. 현정윤 작가가 그를 다독이며 함께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14기 입주작가 중 한 명이겠구나.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아니 왜 이렇게까지 된 거지? 나중에 현정윤 작가에게 그가 금천예술공장 14기 작가가 맞고(이름을 들었는데 그새 잊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오픈스튜디오를 준비하며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울었지만, 눈물을 무척 잘 흘리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흠, 그러니까 그분이 눈물을 엄청나게 잘 흘린다고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머릿속에선 아니 그래도 왜 이게 무슨….
저녁을 먹는데 7시 59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010으로 시작해서 일단 받았는데 금천예술공장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짧게 감사 인사를 주고받고 “그런데 작가님…”. 수고했다는 인사 전화가 아니었다. 9분가량 했던 말을 반복하고 반복하다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고 전화를 끊은 뒤 식당에서 동료들과 얼마간 더 웃고 떠들었다. 구로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하루를 되감아 봤다.1 귀찮지만 정리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무래도 귀찮아서 정리 안 할 확률이 높으니 일단 정리하겠다고 어딘가에서 떠들면 일종의 과제가 되어버리니까 울면서라도 정리하겠지 싶었다. 지금 울고 있다.
아무튼 오픈토크 <레지던시와 프리즈의 동행(?)>은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토크라는 형식은 맹물 같아지기 쉽고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토크라면 아무렴 어떨까 아무 말을 해도 나는 무언가 건질 것이고 그저 두근두근 즐거울 것이다. 물론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지만. 그러니까 학회나 세미나와 달리 토크는 유연해서 참여하는 모두의 어깨를 가볍게 만든다. 이 장점은 다루기 까다롭고 어려우며 패널이 여럿이면 더더욱 그렇다. 대개의 토크가 흐물흐물해지는 건 당황스럽게도 이 장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토크가 아닌 다른 형식을 떠올려 보았는데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오픈스튜디오 프로그램의 울타리 안에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 같다.
내가 별로였던 건 하나 마나 한 말을 해서다. 나는 왜 거의 대체로 하나 마나 한 말밖에 하지 못할까… 하나 마나 한 말을 하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 마나 한 말조차 안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름 괜찮은 건가… 이것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고민인데 이제는 그 고민도 잘 안 하는 것 같아서 쓰고 나니 조금 부끄럽군요…. 기분이 안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그 하나 마나 한 말도 제대로 못 했고 정작 함께 나눴으면 했던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토크가 끝나고 오늘도 이불킥인가 낙담하고 있을 때 어려운 자리인데 이야기해 줘서 고생했고 고맙다는 말이 들려왔다. 어려운 자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내가 잘 말하지도 못했지만, 어깨가 처질 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져서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 나에게 고마움을 건넨 그들도 패널 자리에 앉았다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이 해야 할 말을 했을 것이다.
이윤채 주임에게 연락받은 날은 7월 14일이었다. 주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열쇳말은 레지던시이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자도 초대한다고 했다. 창동레지던시에서도 고양레지던시에서도 누군가 참여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경험이 궁금했고 일단 그렇게 모아 놓으면 어딘가 웃기고 재밌고 아슬하고 엉뚱한 게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뻔할 수도 있지만. 8월 4일 토크 주제에 관해 들었는데 레지던시 옆에 프리즈가 붙어 있었다. 프리즈 아트페어의 프리즈. 나는 아트페어 관람 경험도 참여 경험도 없고 관심도 없을뿐더러 아는 것도 없어서 이러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덩어리가 쪼그라드는데 생각하다가 그래도 레지던시란 단어가 아직 프리즈 옆에 있으니까 어쩌면 이 주제는 결국 돌고 돌아 레지던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로 되먹임될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건 이것대로 내 손 바깥으로 벗어나는 큰 주제이지만 이 기회에 공부가 될 것 같았다.
잘 알지 못해도 혹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때론 그 말이 무엇보다도 날카롭고 정확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줄 모른다. 그게 뭐죠? 나는 가능한 한 요리조리 살펴야 하고 이것저것 읽고 듣고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야 겨우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름에도 불구하고 대충 이야기할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뱉고 나면 열에 아홉은 후회한다(나머지 하나는 말할 수 없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대상보다 더 많이 잘 알 때 비로소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거기까지 가본 적은 없고 그래서 이렇게 하나 마나 한 말만…. 토크를 앞두고 논문을 찾아 읽고 책을 빌리거나 사서 읽고 국공립레지던시 1기 작가에게 연락하고 누구누구누구에게 메일을 보내고 어디문화재단 직원과 채팅을 하거나 저기문화재단 직원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것저것 입력은 되었는데 입력했다고 출력이 잘 되는 것은 아니어서 산책하고 하늘을 보고 한숨 쉬고.
감사한 분들이 많다. 그들의 이름을 쓰기 시작하면 이미 엉뚱한 길로 들어선 이 글이 더 길어질 것이고 어떤 이름은 깜빡하고 쓰지 않을 것이며 결국 뒤늦게 알아차리고 허둥지둥 할 것이다. 그러니 모두 감사합니다.
그래도 감사한 분들 주머니에서 두 사람을 꺼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싶다. 김방주 작가가 이번 오픈토크 <레지던시와 프리즈의 동행(?)>을 제안하고 기획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입주작가(14기)인 그는 금천예술공장이 오픈스튜디오를 앞두고 삐그덕거리는 와중에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생각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냈다. 이건 너무 멋지고 대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오픈토크 프로그램 전반을 담당하고 진행한 운영사무실 이윤채 주임이 없었다면 김방주 작가의 기획은 사라지진 않더라도 쉽지 않은 과정을 통과하며 지금과는 다른 뭐랄까 더 힘들고 지친 모양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 점은 내게 무척 중요하다. 어떠한 제도 비판은 제도가 마련한 장 안에서 제도를 겨누고 찌르는데 그것이 다시 제도를 성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때 누군가는 제도라는 거대한 기계 내부로 들어가 그것을 움직이는 노동자가 되어야 하고 답답하고 갑갑한 행정 업무를 붙잡고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나는 올해 금천예술공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꺼낸 두 사람이 실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몰라도 행정실무자와 미술가는 언제든 충돌할 수밖에 없고 충돌하는 순간에도 함께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은 안다. 김방주 작가와 이윤채 주임은 폭풍우가 쏟아지는 바다 한복판에서 배가 뒤집히지 않게 각자의 자리에서 애쓴 사람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13기 작가와 운영진 모두가 있는 <금천 13기 입주작가(하반기)> 텔레그램 채팅방에 매니저와의 통화 내용과 내 의견을 올렸다. 다음날(9월 4일) 매니저가 긴 답변을 썼고 나는 매니저의 긴 글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붙였다. 공회전하는 느낌이 들었고 <금천 13기 입주작가(하반기)> 채팅방에서는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