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프로필에 2024년 9월 한 달간 인스타그램 앱을 지웁니다. 10월에 만나요. 라고 썼습니다만 인스타그램 앱만 지우는 것은 아니고 9월 한 달간 전시도 보지 않을 겁니다. 아차차 그런데 오늘은 9월 2일 월요일이고 인스타그램 앱을 아직 지우지 못했네요? 9월 1일이 일요일이고 일요일은 대체로 쉬는 날이니 오늘 안으로 쓰고 오네네에 공개하고 블로그에 글을 또 썼다는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후 지워도 괜찮지 않을까요? (괜찮지 않을까요?)
대단한 뭔가가 있어서 9월 한 달 전시 안 보기와 인스타그램 앱 지우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 웹진 비유에서 이연숙/리타 님의 글을 읽었어요. 프리즈 아트페어에 관한 글이 공개될 거란 걸 웹진 비유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본 듯한데 아닐지도 모르지만 인스타그램에서 본 건 확실하고 그때는 시큰둥했고 시큰둥했던 건 제가 프리즈에도 아트페어에도 관심이 없을뿐더러 막연히 조금 늦게 도착하는 글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서입니다.
하긴 서울-일부-미술계의 2024년 9월은 작년처럼 어쩌면 작년보다 더 시끄러울 거란 얘기를 어딘가에서 보았거나 들은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 그랬나요? 2023년 9월이 시끄러웠어요? 서울-일부-미술계에 제가 속해 있지 않거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있어서 그 소음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듯한데 실은 저도 작년 9월에 일이 하나 있었다지요. 그때를 떠올리면 제가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었는지 지금도 헛갈리고 그날 생긴 어떤 부채감이 아직 제게 있는데 빚진 마음에 관한 이야기는 차차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연숙/리타 님의 글을 읽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저는 오랜만에 만나는 귀엽고 좋은 글이다 하면서 친구와 짝꿍에게도 링크를 보냈습니다. 왜 좋았을까 이 글을 쓰기 전 다시 읽어 보았는데 다시 읽어도 동의하는 부분보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글은 대화를 여는 글처럼 느껴지고 저는 조금 다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각도를 살짝 틀면 같은 곳에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그렇다면 무언가 움직일 여지도 있고 그것이 오해일지라도 말을 나눌 수 있게 문을 열어 주어 감사합니다아 하면서 글을 따라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이리저리 생각을 굴릴 수 있는 면이 역시 좋습니다.
제게 <시장이 전부다>는 펜로즈의 계단 모양처럼 보입니다. 특히 마지막 두 문단은 오르락내리락하며 읽는 재미가 있어요. 잠깐 두 문단을 모두 복사해서 여기에 붙여 넣고 다시 읽어 보면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마우스로 긁기가 되질 않네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저자 마크 피셔는 이러한 ‘대안 없음’의 감각을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란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 경제 체계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에 대한 일관된 대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널리 퍼져 있는 감각”이다. 지금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게 있는 건 딱히 아니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자포자기식의 “반성적 무기력”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결과인 동시에 이를 영속화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우리의 생활 세계뿐만 아니라 내면에도 이처럼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그의 진단은 유용하지만, 이러한 진단 자체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진단이 불러일으키는 욕망, ‘자본주의 리얼리즘’ 이후를 상상하려는 욕망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주 잠깐이라도,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구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한 대안을 상상해보자. ‘상상하기’는 대항 투기만큼 빠른 효과를 보는 전술은 아닐지라도 분명 저항의 한 방식이다. 우리가 프리즈 서울과 서울아트위크가 있는 9월에 파업한다면 어떨까? 모두가 휴식하면서 내년에 할 작업에 대해 구상해본다면 어떨까? 마치 시장이 전부인 양 굴지 않아 본다면 어떨까? 이런 유치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면 어떨까?
마지막 문단을 읽고 이 계단 아래 기둥에 철학자 몇 명이 서 있거나 기대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글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 그들을 괄호에 넣고 (죄송합니다) 마지막 문단을 다시 읽고 다시 마지막 문단 위에 올려진 문단을 읽고 다시 마지막 문단을 읽고 다시 한번 또다시 한번. 그러다가 저는 “어떨까?”에서 멈춥니다. 이 오르내림의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게 “어떨까?” 다음에 따라오는 말줄임표 같아서 여기 옮겨 적을 땐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어요. 저는 이 계단이 좋습니다.
어떨까? 이건 유치하지도 않고 바보 같은 생각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상상하기가 저항의 한 방식이 되려면 상상 바깥에서 누군가와 만나야 하고 글쓰기는 그렇게 밖으로 나가기 위한 한 방법일 테니까요. 상상하기와 어떨까 사이를 제가 오해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문단을 지금 숨이 턱턱 막히니 우리 유치하고 바보 같은 상상이라도 일단 해봅시다 로 읽는다면 이는 상상하기에 관한 제안이 되겠지요. 그런데 “어떨까?”에서 멈춰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 마지막 문단은 이연숙/리타 님이 상상하기를 제안하면서 동시에 자기의 상상을 자신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슬쩍 건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단 말이죠.
저는 “어떨까?” 위에 서서 누구를 향한 어떤 파업인지 이야기 나누는 게 우선인 것 같고 한 달을 쉰다면 내년 작업은 왜 구상할까 그냥 쉬면 안 되나요 싶고 시장이 전부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시장이 그런가요? 시장을 잘 모르긴 합니다만 여튼 상상하기도 그걸 각자의 방식으로 해보기도 그니까 둘 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할 수 없다면 어딘가 서울-어떤-미술계에 걸쳐 있는 누군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답하게 됩니다.
그게 꼭 저일 필요는 없지만 착각인지 몰라도 저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제가 이런 걸 하든 하지 않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비율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고 그래서 싱거운 실천이 되겠지만 상상하기가 글쓰기로 글쓰기가 읽기로 읽기가 다른 글쓰기와 움직이기로 이동하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어렵지 않은 걸로 기분 좋은 일 한다는 민망함과 쑥스러움은 잠시 주머니에 넣을게요. 일단 한 달간 전시와 전시 관련 행사엔 안 가고 미술 소식을 가장 많이 접하는 SNS인 인스타그램을 지우는 방식으로 9월 서울의 어떤 미술과 멀리하고 그다음에는 음- 그다음은 다음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글의 모양이 점점 이상해져서 그만 쓰고 싶고 다 지우고 싶어져서 그렇다면 지금이겠지요. 우리 시월에 건강히 만나요.
하고 끝내고 싶지만 덧붙일 얘기가 있습니다. (엉엉) 전시도 다른 많은 무엇처럼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어서 놓치면 아쉬울 때가 있지만 저는 반드시 그때 봐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올해 금천예술공장 오픈스튜디오와 인천아트플랫폼 기획 전시를 보러 가지 못하는 건 속상하고 미안합니다. 금천예술공장 오픈스튜디오가 올해도 9월에 열리는 건 전혀 반갑지 않지만 오픈스튜디오 준비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분주했을 이윤채 주임님에게 감사 인사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올해 금천예술공장에 윤향로 작가님이 계시죠. 저는 윤향로 작가님을 만나 뵌 적이 없는데 작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폐지 관련 소식에 먼저 응원과 도움을 건넸어요. 그때 그런 마음(들)이 필요하던 시기였고 그래서 무척 반갑고 감사하고 힘이 났다는 이야기를 직접 드리고 싶었습니다. 낯을 가리는 저에게 오픈스튜디오는 꽤 좋은 기회인데 인사를 미루게 됐어요. 그리고 인천아트플랫폼은 ······ 운영진 사무실 이사할 때 잠깐 태현 주임님을 만나 전시 보러 갈게요 이전한 사무실 구경도 하고요 하고 큰소리쳤는데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지금 인천아트플랫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글도 제 마음도 아무튼 그러니까 그곳의 일꾼들이 제도 안에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일의 잘잘못을 떠나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0월에 뵙겠습니다.
덧) 실은······ 저도 지금 펜로즈의 계단 위에 있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래와 같은 문장을 오랫동안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래요.
“(미술) 작업해서 (시장에) 팔 수 있죠. 그런데 작업을 왜 팔아요?” (아아.. 작업을 팔면 안 된다는 게 아니고요. 팔 수 있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요. 그런데 왜 작업을 팔아요?)
언젠가 이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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