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 있었습니다

계엄이라고

뭐???

지금이야

플레이스테이션5 듀얼 센스의 쏠림 현상을 수리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했지요. 아 뭔소리야 중얼거리며 만지던 컨트롤러를 내려 놓고 설마 하며 인터넷 창을 열었다. 포털 사이트 뉴스를 보고 유튜브에 올라온 윤석열의 얼굴을 보았다. 언론사 뉴스 알림이 연이어 울렸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읽었다. 당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일단 충격적이진 않았습니다. 정말이구나 정말이야 그래 정말 계엄이구나 이제부터 긴 싸움을 해야 하는구나 그나저나 지금 국회에 가야 하지 않나? 국회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아무렇지 않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에 어이없어하다가 ‘지금이야’ 이후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친구는 지금 국회로 출발했겠네 생각했다.

나는 집에 있었습니다. 국회로 가지 않기로 선택한 것도 아니고 집에 있기로 선택한 것도 아닌 상태로 집에 있었어요. 겁에 질린 것도 아니었고 계엄군이 있는 국회로 가는 게 무섭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집에 있었고 그것은 집에 있기로 선택하는 것과는 어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선택을 지금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만지던 듀얼 센스를 한쪽으로 치우고 문자와 텔레그램과 카카오톡을 오가며 동시에 유튜브와 뉴스 사이트와 SNS를 눌러댔다.

2024년 12월 3일이 지났다. 이후 있는 힘껏 집회에 참여했지만 그날 밤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나의 선택을 부끄러워했다. 광장에 나가는 것이 내란을 막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뉴스에 매달렸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접할 때마다 2024년 12월 3일 밤을 떠올렸다. 그럴수록 더욱더 괴로워졌고 부끄러워졌다. 왜일까? 그날 밤 반드시 국회에 가야 했나 반드시 무얼 해야 한다는 말은 반드시 라는 단어 바깥을 배제하지 않나 따라서 누군가는 그날 밤 국회에 안 가거나 못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나라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1년이 지났지만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긴 싸움을 해야 한다며 짐짓 멀리 내다보는 듯한 문장이 그럴듯한 통찰이 되진 않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건 패배를 내면화한 사람의 주저함에 불과한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선택도 하지 않기로 선택한 나를 아직 용서하지 못하겠습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