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는 9월 1일

9월 1일이다. 9월 1일이라니. 믿을 수가 없지만 이건 믿고 말고 문제가 아니지. 그래도 그렇지 2023년의 9월이라니.

어제, 어제는 오래 누워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짝꿍 출근 배웅하고 다시 누워서 조금 더 잤다. 아마도 11시쯤 눈을 떴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 누워서 눈을 깜빡깜빡 천장을 보다가 아침 약을 먹기엔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일어나서 약을 먹었다. 언제쯤 약을 안 먹게 될까. 다시 누웠다. 눕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누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가깝다. 잠들 법하기도 한데 잠들진 않았고 누워 있었다. 천장을 보았다가 몸을 돌려 짝꿍이 보살피는 화분들을 보았다가 아 식물등 켜야지 누운 채로 조금 움직여 스위치를 누르고 화분을 보다 페페 참 잘 자란다 생각하고 반대로 몸을 돌려 주방 식탁 다리를 보았다가 다시 천장을 보았다. 그런 날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날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언제나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어쩔 수 없음을 통과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음에 머물러 있다. 어제 답변했어야 하는 문자를 누워서 보냈다. 오후 3시쯤 일어날 수 있겠다 조금 움직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식탁으로 몸을 옮겼다. 배고프지도 않았고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목이 말라 트레비 300ml를 마셨다. 식탁 의자에 앉아 아이폰으로 날씨를 보고 뉴스를 몇 개 읽었다. 앉아 있기가 버거워 다시 누웠다. 다시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가 화분을 보았다가 주방 식탁 다리를 보았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5시쯤이었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아직 덥다. 거실에 있는 선풍기를 들고 책상 밑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다. 그것 조금 움직였다고 의자에 앉으니 이마에 땀이 났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짝꿍이 아침에 열어 두었을까 내가 어제 저녁에 닫지 않았을까.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고 반대편에선 선풍기 바람이 분다. 24인치 모니터 앞에서 아이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했는데, 이럴 때마다 매번 어이가 없다고 느낀다. 네 앞에 모니터가 있잖아. 모니터. 아이폰으로 날씨를 보고 뉴스를 몇 개 읽고 SNS를 보다가 밤사이 충전하지 않아 배터리가 20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아이폰을 거실에 있는 충전기에 물리고 방으로 들어와 모니터에 크게 뜬 달력을 보았다. 8월 31일이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권혁규 큐레이터와 윤원화 비평가에게 어제 혹은 그제 보냈어야 할 메일을 느리게 눌러서 보냈다. 권혁규 큐레이터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권혁규 큐레이터는 입에 붙는데, 윤원화 비평가는 입에 잘 안 붙는다. 윤원화 비평가보다 윤원화 님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처음부터 윤원화 님이라고 불러서일까. 모르겠다. 여전히 재미있고 궁금하고 중요한, 중요하다는 표현은 좀 어색하고 안 맞는 느낌이지만 여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메일을 보내고 그래도 오늘 무언가 했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했으나 머무는 건 안도가 아니라 잠시이기에 이내 어깨가 처졌다. 짝꿍이 보고 싶었다. 권혁규 큐레이터에게 메일을 보내고 윤원화 비평가에게 메일을 보내기 전 짝꿍에게 전화가 왔는데, 일 때문에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고 했다. 오늘은 좀 누워있었다고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배고프지 않고 지금은 괜찮아져서 앉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사실이지만 사실이든 거짓이든 짝꿍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했다. 여전히 배는 고프지 않았고 트레비 300ml를 마셨다. 짝꿍이 보고 싶었다.

잠든 모니터를 깨워 달력을 다시 보았다. 할 일이 많다. 왜죠? 머릿속에 할 일이 뒤죽박죽 떠다녀서 정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글을 써서 정리해야지. 비공개로 돌린 글도 조금 고쳐서 공개하고. 하지만 이 글은 8월 31일이 아닌 9월 1일 쓰는 글이고 아직 할 일은 쓰지도 않았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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